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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8세기에 죽음을 담보로 떠나는 천축국 여행은 감히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제목 그 옛날 8세기에 죽음을 담보로 떠나는 천축국 여행은 감히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작성자 내포교육 (ip:)
  • 작성일 2013-06-05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795
  • 평점 0점

우리나라 글로벌정신의 인물 ①
 이현정
 
먼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세계인 하면 신라 8세기 때의 혜초스님을 꼽을 수 있다. 혜초스님은 지금의 불교성지인 인도만 다녀온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등지까지도 폭넓게 다녀왔다. 또한, 13세기 후반의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14세기초반 오도리크의 <동유기>.  그리고 14세기 중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더불어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는 우리의 소중한 기록이다.
특히 이 가운데 가장 앞선 기록이라 그 의미가 크다.
스님이니까 불교성지순례 쯤 하고 왔겠지 했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가게 된다.
불교성지는 3분의 1정도 걸렸다면 나머지는 오히려 이슬람.
힌두교에 대한 소개 즉 다른 문화, 다른 종교의 지역을 넘나들었다.
무려 40여개의 나라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쯤 되는 것 일 텐데, 이때에 문명과 사상.
그리고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아랍과 이슬람세계를 접한 첫 한국인이자 그 누구보다도 먼 곳까지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던 혜초스님이다. 그 옛날 8세기에 죽음을 담보로 떠나는 천축국 여행은 감히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혜초스님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경계를 허무는 그것.
그것이 세상이라고 하면서 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 등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하려 소개한 진정한 세계인이었다.

그리고 9세기의 장보고를 들 수 있다.
예로부터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했다고 한다.
바다를 장악하고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것 즉, 장보고선단의 힘이다.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요충지. 일본과 중국을 잇는 기점.
동아시아 바다를 누빈 중심지. 멀리 아랍까지 연결했고 이집트박물관에도 그 증거자료가 있을 정도이다.
신라의 왕성한 무역과 외국과의 교류로 거대 부를 만들고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제적 부도 만든 셈이 되었다.  각 대륙의 문화와 문물을 소개하고 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거대하게 보여주었다. 라이샤워 전 주일대사는, 장보고에 대해 , 그는 동아시아 역사상 매우 특이한 인물로 상인의 왕자로 불러도 될 것이라고 했고, 한. 중. 일간의 광범위한 무역을 하면서 그 당시에는 대부분 그 무역을 한국인들이 지배했다.  그는 부유해지고 권력을 갖게 되었으며 중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그 영향 밑에 두어 통제했다고 극찬을 한 바 있다.  요즘말로 하면 국제무역통상이나 국제외교 등의 탁월한 존재였다. 심지어는 통일신라 42대 임금 흥덕대왕은 장보고를 청해진대사로 임명한 장본인이었는데, 장보고를 무역지인간이라고 표현했다.   
무역이란 말을 쓴 것을 보면 장보고의 민첩성과 기동성을 느끼게 한다.
국가발전에서 무역이야 말로 인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 아닐까 한다.
쇠퇴해져가는 신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 왕은 무역으로 되살리고자 했다.
장보고의 해드쿼터임이 밝혀졌다.
군사 훈련하던 곳도 있고. 무역. 객관들. 장터 들이 있던 곳이 있었다.
세계로 가는 문이었고. 세계 물류의 허브였다.
즉 해양 상업기지의 총 본연이었다. 아시아의 내륙으로 출발하는 실크로드의 시발점이었으며 세라믹 해양로드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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